몸을 찾는 해




2021.01.01

2021년부터는 하루-일주일-일년 단위로 몸과 마음을 소모하는 것을 멈추고 싶다. 내가 아직 알지 못하는 시간, 몸 그리고 마음에 대해 상상하며 움직이기로 다짐한다.



2023.09.10

이 글은 2023년, 내가 한국 나이로 만 서른네 살이 되던 해, 독일에서 생활한 지 십 년을 채우는 해에 쓰여졌다. 나는 작년 2022년 6월, 더이상 기능할 수 없는 상태를 경험했고 모든 일을 멈춘 상태로 일년의 시간을 보냈다. 아프기 전에 나는 당시의 삶이 소모적이고 과도하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늘 그곳에 있었지만 대안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고 그저 어딘가에 「내가 알지 못하는 시간, 몸 그리고 마음이 있을 것」이라고 짐작할 뿐이었다. 어느 선생님으로부터 「몸을 찾는 해」를 보낼 거라는 말을 들었다. 이 글은 내가 언젠가 잃어버린 몸, 시간 그리고 마음에 대해 할애하는 글이다.



2022.05
의사에게 설명하기 위해 병원 대기실에서 적어둔 당시의 증상들



2022.08.01

아무것도 하지 않은지 두 달이 됐다. 

어떤 사람들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말은 단순히 직업을 관둔다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직업을 관둔다는 말은 곧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하던 일을 그만둔다는 의미로 통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지금껏 가져온 직업들 —예술가 그리고 사회 정의 구현 비슷한 슬로건 아래서 해온 그 모든 일들—이 나의 생계에 안전을 보장한 적이 없을뿐더러 자본주의적 생산 활동에 부합하는 일은 아니었기에, 나의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결심은 단순히 직업을 그만두겠다는 뜻은 아니다.

생산 활동이 없어진 자리를 다른/재-생산 활동이 메꾼다. 내 몸 씻기, 바닥 쓸기, 밥하기, 설거지하기, 장보기, 쓰레기 분리수거하기 등. 데드라인과 마일스톤이 사라진 자리를 하루 치 의식들이 메꾼다. 매일 하다 보면 일과가 되는 작은 일들. 아침에 눈 뜨면 집 앞으로 나가 카푸치노 마시기, 산책하며 한국의 가장 가까운 친구와 통화하기. 듀오링고 앱으로 아랍어 5분 배우기, 하루에 최소 만 이천 보 걷기 등. (만 이천 보는 대략 8킬로미터, 여유롭게 움직이면 두 시간 정도 걸린다.) 도시의 구석구석을 걷다 보면 5년을 살았던 베를린에서 두 귀, 두 눈 전부 가리고 살았구나 싶다.

바꾸려는 습관도 있다. 여행 짐은 최소화해서 다니기로 한다. 수분 크림, 수분 세럼, 여드름용 튜브 약(화농성 용, 작은 염증 용) 아토피 약(가벼울 때, 심할 때), 제모 족집게, 머리빗, 특별한 사이즈의 헤어 롤, 귀 청소용 면봉, 치간 칫솔, 여분의 신발, 여분의 옷들- 다양한 종류의 상의 하의, 혹시 필요할 책 몇 권, 그 모든 ‘혹시’를 대비하는 잡다한 것들. 여행지가 한국일 때면 고향에 대한 집착까지 더해져서, 한국에서만 구할 수 있는 참기름, 국물 내기용 다시, 콩가루 따위의 식료품부터 카카오 프렌즈가 그려진 손톱깎이, 요즘 유행하는 신발, 코에 붙이는 팩까지- 캐리어 두 개를 꽉꽉 채워 독일로 돌아오곤 했다. 23kg 캐리어 두 개는 거의 내 몸무게에 육박하여 마치 한국 물건으로 만들어낸 나의 인체 모형을 만들어 업는 꼴이었다.

십년 동안 지속해온 나의 집 없는/부표의 상태가 만들어낸, 내 손이 닿는 곳만이라도 나의 통제하에 있도록 촘촘히 계획하는 이 집착적 증세는 「집」을 「짐」으로 환산한 꼴이었다. 차곡차곡 접고 굴리고 진공포장한 나의 「집에 대한 끝 없는 집착」을 어깨로, 팔로, 다리로 끌고 다녔다.



어깨통증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 잘 모르겠다. 어깨가 아프다는 사실을 인지하기 시작한 게. 「몸의 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한다.」, 「Bauchgefühl」같은 말이 귀에 들리기 시작했을 때는 이미 통증이 나의 일상 속에 뚜렷하게 뿌리내린 뒤였다. 

폼롤러, 반신욕, 어깨 통증을 위한 요가, 양초, 위스키 등. 긴장을 완화하기 위한 도구에 시간과 돈을 더 많이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일하는 시간, 책임의 무게를 더 적게. 목표나 기준의 높이를 더 낮게 낮출 수는 없었다. 상상해 본 적도 없다. 한 시간을 일하면 삼십 분간 요가나 마사지를 해야만 다음 한 시간을 일 할 수 있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지금 당장 나를 대신해 이 일을 해줄 사람은 없으므로 그리고 데드라인이 코 앞이기 때문에, 그냥 해-나갔다. 그냥 꾸역꾸역 어떻게든 했다. 눈 뒤가 항상 뻑뻑해서 인공눈물을 샀다. 명치가 답답해서 위스키도 샀다. 일이 끝나고 나면 아무와도 말할 힘이 없었다. 발코니에 우두커니 앉아 양초의 일렁이는 불빛, 고속도로를 빠르게 달리는 자동차의 물결을 바라보곤 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눈물이 흐르는 때가 왔다. 마치 둥근 장독에 물이 가득 차서 한 방울 두 방울씩 삐죽-하고 흘러내리는 모양이었다. 내 항아리에 더 이상 단 한 방울도 더할 수가 없었는지 아니면 이미 넘치고 있었던 건지,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삐죽 흘러내리곤 했다. 커튼 사이의 부드러운 빛을 보다가, 출근길에 지하철 안에서 갑자기 목이 메어왔다. 당시 나는 밑이 빠진 독에 열심히 물을 길어다 붓는 연애도 하고 있었는데, 이런 이유로 나는 「둥근 항아리와 물」에 대해 자주 상상했다. 넘치고 있는 항아리와 단 한 뼘도 채워지지 않는 항아리 사이를 5년 동안 나는 참 부지런히 그리고 미련하게 오갔다.

지금 생각해도 잘 모르겠다. 물이 찰랑찰랑 넘치는 항아리를 어깨에 이고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그때. 그렇게 엎어지는 것 말고 다른 대안이 있었을까? 

그러던 어느 날 마침내. 침대도 내 몸도 물에 푹 젖어 움직일 수 없는 그 아침이 왔다. 그날은 오랜 동료가 팀을 떠나는 날이었다. 작은 꽃이 수놓아진 노란 셔츠를 입은 동료에게 모든 팀원이 정성이 담긴 말과 선물을 전했다. 나는 지난 5년간 일한 곳을 떠날 때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송별회 같은 거 하지 않은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지금까지도 입 밖에 꺼내기 어려운 그 이유. 밑 빠진 독에 너무 많은 시간을 쏟은 내 미련함을 도저히 한 번 더 마주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온몸이 푹 젖은 기분으로 떠나가는 동료의 아름다운 뒷모습을 보는 동안에 멀리서 내 항아리가 구르는 소리가 들렸다.



스케쥴러

B5 사이즈 스케쥴러를 부적처럼 지니고 다니곤 했다. 스케쥴러는 무한한 세계에 던져진 내게 주변을 더듬기 시작하는 지표와 같았다. 거대한 시간의 우주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손바닥만 한 종이에 모든 잡다한 「해야 할 일들」을 새겨넣곤 했다. 그러지 않으면 먼지보다도 작은 내 존재가 시간의 파도에 휩쓸려 언제든 사라질 것만 같았다.

그리드형의 월 계획표에서는 한 칸의 네모가 하루를 의미한다. 나는 이 한 칸의 네모를 두 개, 네 개, 여덟 개로 쪼개서 하루를 계획하고 움직였다. 하루를 24시간으로, 일주일을 일곱 개의 하루로, 한 달을 네 줄의 일주일로, 일 년을 열두 페이지의 달로 인식하는 생활은 시간이 내 통제 아래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통제에 대한 환상은 나를 안심시켰다. 하지만 이러한 환상은 모순적이게도, 비어있는 페이지에 대한 불안으로 이어졌다. 「아무 일정 없음」 「아무것도 하지 않음」에 대한 불안이었다. 해야 할 일 리스트를 정리하고 적어 내려가는 건 「생산적인 일」들을 시각화하는 일이었다. 끼니 거르지 않기, 쉬기, 청소하기 등 생산 활동 외의 일과는 일정으로 인지되지 않았다. 그 시간은 공백으로 남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되었다.

내가 이십대 후반부터 삼십 대 초반의 5년을 보낸 일터 또한 「보이는 일」 혹은 「생산적인 일」 외의 재생산 노동, 유지관리 그리고 감정 노동의 중요성에 대해서까지는 관심을 쏟을 여력이 없는 곳이었다. 매해 정부의 보조지원금에 따라 활동의 귀추가 정해지는 불안정한 환경에서 비영리 기관으로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 늘 중요했다. 대의를 위해서 사소한 것들은 포기해야 하는 모순에 대해 모두 입을 다물었다. 생산노동이 늘 대의의 축에, 재생산 노동은 늘 「어차피 티 나지 않는 일」이 되어 뒷전으로 미루는 일이 반복됐다. 

스케쥴러에 빼곡히 적어내려간 내 일정 또한 모두 드러내기 위한 일들이었다. 이벤트 호스팅, 마켓 프로덕션, 전시 프로덕션, 동료의 전시 오프닝부터 생판 모르는 사람 전시 오프닝에 얼굴 비추는 일까지. 드러내고, 보이고, 티를 내는 일들- 그렇게 나와 내 일을 외부로 보이는 시간이 스케줄러에 빼곡히 모습을 드러내는 동안 침묵에 필요한 시간, 충전을 위한 시간, 휴식을 위한 시간은 사라져갔다.

침묵하기보다 소리를 「내는 것」, 흐려지기보다 나를 「드러내는 것」에 에너지를 쏟는 건, 비단 문화예술계만의 문제가 아니라 나 자신의 생존과도 관련이 있었다. 지난 십 년간 독일에서 「동양인 여성」으로 살아오면서 어떻게 해야 내 목소리가 들릴지 고민해야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 존재가 금세 흐려지고 내 목소리 또한 사라지는 것 같았다. 잠시라도 침묵하면 내가 어렵게 획득한 내 목소리가 사라질 테니 나는 숨는 연습, 사라지는 연습에 대해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아프고 나서 가장 먼저 한 일이 그리드형 스케줄러를 창고 속으로 넣는 일이었다. 나를 지탱해온 열과 행을 지워버릴 각오가 되어있었다. 아니, 열과 행의 세계로부터 나를 지워버릴 각오가 되어있었다. 문득, 내 앞에 지금껏 보지 못한 들판이 펼쳐지는 기분이 들었다. 아주 오랜만에 심장이 뛰었다.



2018.07.24
설혹 한 천사가 있어 갑자기 나를 가슴에 껴안는다면 그 힘찬 존재에 눌려 나는 사라지고 말겠지. 정녕 아름다움이란 우리가 가까스로 견디어 내는 무서움의 시초일 뿐 그럼에도 우리가 그토록 아름다움을 찬미함은 그것이 우리를 파멸시키는 것 따윈 아랑곳하지 않는 까닭이어라. 모든 천사는 두려움을 만들어 내다니. ― 라이너 마리아 릴케, 두이노의 비가



아름다움과 천사들

나는 2019년부터 2021년까지 「몸과 기관」이라는 제목의 작업을 만들었다. 다양한 예술기관에서 여러 가지 형태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개인과 기관이 서로에게 끼치는 영향에 대해 관찰하는 작업이었다. 내게는 예술 기관마다 다루는 관심사가 다르고 각자 다른 성격을 띤다는 사실이 사랑스러웠다. 기관이 특정한 목소리를 만들어내기까지 그 뒤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관계가 궁금했다. 일하는 사람들의 어린 시절 그리고 그들의 꿈이 기관의 얼굴과 목소리를 형성하는 데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고 싶었다. 가까이에서 이 관계를 관찰하고 싶었기에 나는 실제로 이런저런 「예술기관」에서 오래 일했다. 

기관을 몸으로 인식함과 동시에 몸을 기관으로 인식하는 이 자문화기술지적 작업은, 나아가 기관을 사회 구조의 축소 체로 바라본다. 사회 구조적 불평등이 예술기관이라는 특수 집단에 어떻게 반영되는지 그리고 그 집단에서 활동하는 개인의 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아주 가까이에서 느리게 관찰한다. 이러한 「몸과 기관」에 대한 관찰은 제삼자의 시점에서 거리를 두고 시작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관찰자 또한 기관에 참여하는 하나의 몸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게 된다. 예술기관은 가부장제, 성차별, 인종차별, 계급주의, 자본주의, 식민주의로부터 자유롭지 않으며, 이 모든 뿌리 깊은 폭력은 개개인의 몸에 밴 습관에서 드러난다. 나라는 개인의 몸 또한 물론 이 모든 것에서 자유롭지 않다.

흐리고 서늘한 베를린의 겨울. 어느 기관의 공사장 한가운데 불을 피우고 함께 일하던 동료들을 모두 모은 적이 있었다. 나는 왜 공사장 한복판에 불을 피웠을까? 그리고 왜 사람들을 모았을까? 그 겨울은 기관 내에서 내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명료하게 드러나기 시작하는 해였다. 「몸과 기관」작업을 지속하면서 당시 동료들이 볼 수 없는 것이 자꾸만 내 눈에 보이는 것을 느꼈고, 그것들에 대해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꼈다. 당시 내가 일하던 조직 안에서 나만이 낼 수 있는 목소리가 있다고 느꼈다. 마치 기관이 자꾸 어느 부분이 아프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 아픔을 짚고 넘어가야만 회복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회복을 위해서는 온기가 필요했다.

예술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은 각자 천사의 존재를 믿으며 일한다. 어떤 목소리를 내는 기관이건 그 뒤에는 결국 개인과 그가 믿는 천사가 존재한다. 내가 믿는 천사는 조용한 촛불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차가운 어둠 속에서 이 작은 촛불은 다른 존재들의 얼굴을 밝혀주었다. 다른 현실들을 비춰주기도 했다. 이들을 가까이 들여다 보는 동안 불꽃이 내 몸에 번지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따뜻한 온기는 뜨거운 불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천사는 나를 껴안았다. 



돌아오기

모든 일을 멈추고, 비행기 안에서 열다섯 시간을 앉아있는 동안 나는 독일의 집으로부터 점차 멀어졌다. 동시에, 2013년- 그러니까 정확히 10년 전에 떠나온 집으로 점점 가까워졌다.

이곳을 떠나는 동안 저곳에 도착하고, 저곳을 떠나는 동안 이곳에 도착하고, 이곳을 비우는 동안 저곳에 존재하고, 저곳을 비우는 동안 이곳에 존재하기를 십 년간 반복하는 동안 나는 그 중간 어딘가에 존재하는 사람이 되었을까.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 왔다. 낙엽 더미 사이로 진달래가 빼꼼히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돌아온 봄의 끝자락, 나는 다시금 돌아가기로 한다. 다시 긴 여정. 자정이 넘어서야 베를린에 돌아왔다. 나와 나를 둘러싼 환경이 어긋나 있는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그저 아직 도착하는 중인지도, 혹은 8000 킬로미터라는 거리가 실재하기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이곳 아니면 저곳, 돌아오기 아니면 떠나기 같은 질문을 멈출 때, 비로소 내 앞의 존재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책가방을 맨 아이들, 사거리 과일가게 아저씨의 장난기 어린 농담, 우르르 날아와 테니스 코트의 모래를 쪼는 참새들, 고속도로 옆으로 흐르는 반짝이는 하천, 2000원짜리 커피에서 피어오르는 온기 같은 것들이 정말로 그곳에 존재하기 시작한다. 그러는 동안, 혼자 있을 때도 미소 짓는 연습을 한다. 엄마와 침대에 나란히 누워 김밥을 먹었다. 시간이 이상하게 흘러간다.
첫째 조카의 드로잉



둥지

집을 새로 구했다. 5년 동안 살아온 집에 돌아온 그 밤에, 이제는 이 집을 떠날 때가 됐다는 것을 알았다. 친구의 친구를 통해 노이쾰른에 집이 잠시 빈다는 소식을 듣고 집을 찾아갔다. 살던 사람은 이미 이사 나간 뒤였다. 다음 챕터로 함께 가기엔 애매해진 물건들, 컵 몇 개, 엉성하게 만든 작업대, 두꺼비집에 붙어있는 흑백사진, 접이식 가든 테이블을 제외하고는 텅 비어있었다. 아직 겨울이 끝나기 전이어서인지 집 안은 약간 차가웠고, 한쪽으로만 창이 나 있는 특이한 구조였다. 창 바로 앞에 나무 한 그루가 보였고, 헐벗은 가지 위에 아무도 살지 않는 새 둥지가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었다. 그 빈 둥지를 보자마자 이 집을 계약해야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동이 틀 무렵에 이 집에 가장 먼저 들리는 소리는, 길 건너 신문가게 아저씨의 빗자루질 소리다. 하루도 빠짐없이 밖으로 걸어나와 밤사이에 길에 쌓인 것들을 쓸어내는 아저씨 덕분에 나는 이제 곧 일곱 시가 된다는 걸 안다. 모퉁이 밖 리들에서 빵이 준비됐다는 오븐의 멜로디가 흘러나오면 나도 천천히 눈을 뜬다. 이불을 정리하고, 커피를 내리고, 라디오를 켜고, 빈 벽에 아른거리는 햇살을 바라본다. 창 밖 둥지에 찾아온 비둘기 한 쌍이 이른 아침부터 볼을 비비는 모습을 지켜본다. 커다란 양동이에 물을 반만 채워서 발코니로 나간다. 발코니에는 레몬 그라스, 타임, 바질, 보라색 바질, 살바이, 드럼 스틱, 방울 토마토, 고추, 자스민, 깻잎이 또 하루만큼 자랐다. 길 건너편 건물 3층에 사는 여자도 나와 같은 시간에 창문을 연다. 건물 아래 빵집엔 이미 아주머니들이 앉아있다. 다른 개들만 보면 짖어대는, 코가 납작하고 몸집이 큰 개도 그 곁에 앉아있다.

유달리 해가 눈 부신 날엔 발코니에 누워 얼굴에 쏟아지는 햇살을 느낀다. 눈을 감고 나무 잎사귀가 일렁이는 소리를 듣고, 같은 바람이 내 머리카락을 어루만지는 것을 느낀다. 오토바이가 멀어지는 소리를 듣고, 온종일 사람이 끊이지 않는 빵집의 대화 소리를 듣는다. 아마도 터키사람들인 것 같다. 너무 조용한 오후에는 피아노를 연주한다. 나를 위해 요리하고, 방을 쓸고, 거울을 닦고, 빨래를 갠다. 책장에 아른거리는 내 머리카락의 그림자를 만져본다.



초대장

나의 새 집으로 당신을 초대하고 싶다. 당신이 읽고 있는 이 글의 대부분은 이 집에서 쓰여졌다. 이 곳으로 이사한 뒤로 나는 혼자서 아주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그 시간동안 과거를 회상했다. 하지만 지나간 시간을 더듬는 동안 나는 현재에 있었다. 

이 집에 이사와서 처음 한 일은, 내가 지난 십 년 간 모아온 물건들을 빈 바닥에 늘어놓는 것이었다. 송장 스티커가 여기저기 붙어있는, 창고의 곰팡이 냄새가 나는 이 우체국 상자 안에 나의 십 년이 들어있었다. 아무런 가구도 없는 거실 한가운데서 박스 테이프가 깨지는 소리를 내며 찢어졌다. 내 몸의 일부 같은 물건들을 하나씩 꺼내서 늘어놓으니 아직 낯선 공간의 바닥이 꽉 찼다. 그 가운데 잠시 앉아 그것들을 바라보고 있는데 갑작스럽게 울음이 터졌다. 슬픔은 아니었다. 그동안 침묵하고 있던 물건들이 내 몸을 통해 진동하는 것에 가까웠다. 그 진동은 오랫동안 이어지다가 천천히 사라졌다.

이 집은 태양을 반사하는 물결처럼, 대기의 움직임을 보여주는 나무처럼, 나에게 「지금 여기」를 상기시켜주는 공간이었다. 이 곳에서 찰나 동안 반짝이던 진동을 모아서 당신과 나누려고 한다. 

2023.12.15 - 2023.12.22
kihyun.park0@gmail.com 
Visit only by appointment 
Floor Plan

Diele
젖은 벽
라쿠나 관찰하기 A

Wohnen
입 밖에 내기 연습
쌓아올린 무너진 돌탑
둥지

Zimmer
라쿠나 관찰하기 B
다른 세계는 있지만, 그것은 이 세계 안에 있다



물건들 2013-2023 

001 2017년 11월 18일에 한국에서 받은 우체국 상자

002 할머니의 조약돌 3개와 흰 조약돌

003 산처럼 보이는 유리조각

004 사해의 소금바위를 만지는 내 손 사진

005 아랍어가 쓰여진 교육용 장기 모형

006 드로잉 「당신은 치명적이다」

007 핸드폰 8개

008 한 페이지가 없어진 만화 「Saudade」

009 베를린 ABC존 학생 교통카드

010 내가 살았던 4개의 다른 집들의 벽 사진 4장

011 드로잉 「나는 순전히 상상적인 일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차라리 소설의 인물들이 더 진실해 보일 것이라고, 적어도 더 재미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012 드로잉 「말은 오해의 근원이다」 

013 로마에서 온 M의 엽서, 2021년 9월 6일 도장이 찍혀있음

014 여권용 증명사진들

015 신분증 2장, 독일 체류허가증 1장 2018.02.16 까지 유효, 한국 주민등록증 1장 유효기간 없음 2016.12.07 발급

016 영수증 더미가 여러 개 들어있는 진공 포장 두 개 

017 예전 동료 두 명과 함께 찍은 흑백 아날로그 사진 

018 파란색 펜으로 A4 용지에 쓴 W의 짧은 메모: 「냉장고에 있는 음식 마음껏 먹고 네 집처럼 편히 쉬어.」

019 세 열쇠 꾸러미, 총 8개의 열쇠

020 핑크색 가발

021 하트모양 안에 SEX라고 새겨진 푸른 회색의 도자기 컵 

022 성냥갑과 성냥갑 복제품

023 간장 종지에 보관한 말린 수국 

024 마사지 카드 

025 빨간 원피스

026 Y의 카드: 「당신은 항상 당신 안에서, 당신이 찾고 있는 것을 찾을 것입니다」

027 드로잉 「Wenn ich spreche, versuche ich, die Impulse dieser Kraft einzuführen, die aus einem volleren Sprache Begriff fließen, welcher der geistige Begriff der Entwicklung ist.」

028 책 <18종의 인물화 기법과 조선 후기 인물화 기법의 개념> 

029 책 <사자소학> 

030 금색 액자 속 I의 선인장 드로잉 

031 <어느 이웃>의 대본 

032 스케쥴러 

034 드럼치는 미니 마우스 장난감

035 헬기 페스티벌의 티켓 

036 서예 연습 

037 카스코 앞마당에서 주운 흰 조약돌



조약돌

손에 꽉 차는 크기의 둥근 돌 몇 개를 할머니는 집안 곳곳에 숨겨놓으셨다. 그리고 나중에 이 돌을 보거든 당신을 생각하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할머니의 돌은 특별한 색깔이나 모양을 가진 것도 아니고, 매끈매끈 부드러운 것도 아니고, 어디서든 볼 법한 조금 거친 둥근 돌이다. 

어느 볕 좋은 날에 길에서 반짝이는 흰 조약돌을 주워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조약돌을 선택한 것이 나만의 결정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조약돌의 선택이기도 한 것이다. 할머니가 왜 돌과 당신을 동일시하셨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입 밖에 내기 연습

요 며칠 저는 입 밖에 내기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한 뼘도 채 되지 않는 제 마음속에는 많은 것들이 서로 엉켜있는데요. 이 많은 것들이 한 번쯤은 각자의 소리를 내기를. 그것은 파도가 바다로 돌아가는 소리일 수도. 그것은 비가 마르는 소리일 수도. 그것은 화장실에 숨어서 내는 울음소리 일 수도. 그게 무슨 소리인지 저는 아직 잘 모릅니다. 제 안에 엉켜있던 수많은 것들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 있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저는 차가운 얼굴을 하거나 소리를 치거나 혼잣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여전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릅니다. 그래서 입을 열어두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가만히 듣기로 했습니다. 제가 입을 열면 그들이 스스로 나올 수 있도록. 오래 걸려도 괜찮고 느려도 괜찮고 답답해도 괜찮아요. 말을 고르는데 원래 시간이 걸립니다. 엉켜있는 것들을 푸는 데는 원래 시간이 걸립니다. 각자 가고 싶은 곳을 보기까지 원래 시간이 걸립니다. 저는 이 자리를 떠나지 않겠습니다. 당신이 내는 소리를, 빨라지는 단어를, 느려지는 단어를, 잘못 고른 단어를, 소리 사이의 숨소리, 숨소리 사이의 침묵을 모두 듣겠다고 약속합니다. 당신이 마침내 말을 마치고 천천히 일어나 문을 열고 당신의 발걸음 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까지. 입을 열고서.



13.11.2022

요즘은 강원도에서 시간을 보낸다. 아침에 일어나 굽이굽이 강물을 따라 달리고, 매일 꾸준히 마당에 쌓이는 낙엽을 쓸고, 나뭇가지를 모아다가 불을 지피고, 닭장에 맑은 물을 길어다 주고, 굳이 글씨들도 뒤적거리고, 고양이랑 저녁밥을 조금 나눠 먹고 있다 보면 해가 넘어가서 깜깜하다.

아침 산책길에 인간이라고는 나 뿐인데, 강물엔 매일 눈 부신 햇살이 비추고 낙엽은 하염없이 진다. 바람도 새도 벌레도 부지런히 움직이는 그 사이를 걷고 있으면, 마음속에 애써 지어놓은 집이 스르르 허물어진다.



라쿠나 바라보기 

풍경이 바뀌었다
모든 것이 움직이는 동안에
가만히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모든 것은 몸을 움직인다
춤이 아니더라도
걸음이 아니더라도
흙을 주무르는 것이 아니더라도

모든 것은 이미 움직인다
버드나무는 바람에 몸을 떤다
진짜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목소리는 떨린다
친구의 죽음을 이야기하는 어깨는 움츠러든다

입술은 미묘하게 휘어진다
나뭇잎이 다른 나뭇잎 위로 떨어질 때
두 벌레가 서로의 뺨을 비빌 때
두 나무가 몇십 년간 서로 껴안았다는 걸 깨달을 때
이마에 바람이 닿을 때

이들을 바라볼 때  
심장은 산산조각 나기 시작한다
수없는 나뭇잎의 조각들로
물 위의 퍼즐 조각들로
우리가 앉아서 정말로 바라볼 때 


-끝